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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강화. 아산서도 양민 520여명 집단학살 -연합뉴스

등록일: 2006-02-27


6.25 때 강화. 아산서도 양민 520여명 집단학살 -연합뉴스 거창사건 국회폭로 이전 국무총리 보고 사실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6.25 전쟁 중 군. 경찰. 사설단체 등에 의해 거창지역 외에 강화, 아산 등지에서도 양민 520여명이 집단 학살된 사실이 정부 공식문건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거창사건도 당시 정부 주장과 달리, 국회에서 폭로되기 전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등 정부차원에서 공식보고 채널을 통해 사전에 인지됐음을 입증하는 문서도 발견됐다. 이런 사실은 국가기록원이 최근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 123개 기관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기록물 보존실태 조사결과 밝혀졌다. 국가기록원은 26일 이번 조사에서 경찰. 검찰이 보고계통을 통해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에게 보고한 기록물과 1960년 4.19 이후 경남 함양군청에서 접수한 희생자 접수기록물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거창 외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을 보면 1951년 5월12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서 60여명이 총살됐고, 같은 해 7월21일에는 충남 아산군에서 좌익분자와 그 가족 등 183명 전원이 총살돼 부근 금광에 버려졌다. 이어 같은 해 1월 상순 강화도 교동도 주민 212명이 부역자라는 이유로 총살됐고, 같은 해 6월16일에는 전남 해남경찰서 형사가 부역자 19명을 살해한 기록도 있다. 같은 해 10월9일 충남 서산군 일대에서 경찰이 28명을 총살했고 10월20일에는 전남 경찰 소속 경찰관이 부역 자수자 25명을 총검으로 살해한 기록도 있다. 이 같은 정부 공식문건이 확인됨에 따라 집단학살 사건의 유족이 남아 있지 않거나 고령으로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가 없어 묻혀있던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새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거창사건의 진상이 국회에서 폭로되기 18일 전에 당시 경찰과 검찰, 법무장관을 거쳐 국무총리 선까지 보고 돼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숙의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건도 발견됐다. '국군 토벌작전에 수반한 적성분자 사살사건 발생의 건' 등의 기록문서를 보면, 거창출신 신중목 의원이 1951년 3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건을 폭로하기 18일 전인 3월11일 국무총리에게 진상을 보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했다. 또 신성모 국방장관에 대한 검찰의 처리현황을 보고한 문건인 '검찰사건 보고의 건'(1952년 3월4일)에 따르면 신 장관이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국군 9연대의 작전명령을, 이동군법회의 설치 권한이 사전에 작전명령에 포함된 것처럼 수정할 것 등을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은 거창사건 연루자들의 재판과정에서 작전명령 제5호 및 부록의 위. 변조 책임자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결과에 따라 위. 변조 책임자를 가리는데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거창사건을 추적해온 한인섭 서울법대 교수는 "신 의원의 국회폭로 이전에 내무부와 법무부, 군부 등 세 방면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졌다"면서 "국군토벌작전에 수반한 적성분자 사살사건 발생의 건 자료는 내무부 계통의 보고인데 이번에 원자료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신 장관이 작전명령 수정을 직접 지시했는지 아니면 김종원 등이 했는지 논란이 있는데 검찰 보고건의 자료는 원래 작전명령이 무엇이었는지, 신장관의 역할에 대한 진상규명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전협정 체결당시 공보처 집계에 따르면 남한에서 토착 공산세력이나 인민군에 의해 살해된 양민은 12만8천936명이고 피랍자는 8만2천595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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