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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문화-거창일소리 예능보유자 박종섭씨 -경남신문

등록일: 2006-08-08


토종문화-거창일소리 예능보유자 박종섭씨 -경남신문 우리가락 되살리기 외곬인생 휴일이면 녹음기·카메라 들고 오토바이로 전국 누비며 민요 채록 수집한 노래·전설만 수만여 건 달해 "노래는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죠" 일소리보존회 회원 대상 전수활동도 산이나 들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는 일소리. 그것은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었다.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정서가 마음 깊은 곳에 내리꽂혔다. 아니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무게가 징하게 전해져 왔다. 하지만 도시화로 줄어들기만 하는 농촌 들녘에 구성진 민요가락 대신 트랙터 기계소리만 점점 울려 퍼지는 것은 큰 아픔이었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구전으로 전해오던 우리 가락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다가왔다. 우리 민요와의 고단하고도 끈질긴 인연은 그렇게 다가왔다. 벌써 30여년. 거창일소리의 예능보유자인 거창의 박종섭(65·계명대학교 평생교육원 거창학습관 관장) 교수. 생계는 내던진 채 민요에만 평생 매달려온 그를 주변에서는 ‘민요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정도다. 휴일이나 방학 때면 어김없이 산간벽지의 외딴마을을 찾아 헤매면서 수집·발굴해 집대성한 구전민요와 전설만 해도 수만여 건에 이를 정도니 알 만하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외래문화의 오염 속에 민족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매개체로 민요의 보존과 계승이 절박하다는 인식 속에 30여년 전에 부녀회 등을 찾아 가르친 것을 비롯, ‘거창일소리’와 ‘거창삼베일소리’의 발굴·고증을 통해서는 각각 도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및 후보자로 지정되는 등 일소리의 전수에도 열정을 쏟아오고 있다. #민요와의 질긴 인연 `진기 명기 넓은 들에 쟁피 훑은 저 마누라/ 날 마다고 가더니/ 오나가나 쟁피 훑네.' 지난 73년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름방학. 거창읍 가지리 개화마을 앞 들길을 무심코 지나다가 논에서 일하는 농민들이 입 맞춰 부르는 모심기 소리에 이끌렸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농민들에게 다가가 노래의 의미를 묻고는 녹음기로 채록했다. 농부들에게 이 노래의 뜻을 알아보니, 집안이 가난한 한 선비가 공부에만 치중해 가난에 못이겨 도망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재혼해 들녘에서 쟁피를 뽑고 있었는데 그 후 선비가 과거에 급제, 이 들녘을 지나가면서 옛 아내를 발견하고 부른 노래라는 설명을 들었다. 당시 박 교수가 이 노래에 끌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가난 탓에 지난 72년 32세 나이로 계명대 국문과에 입학, 여기서 민속학자인 조동일·서대석 교수의 `구비문학'을 수강하면서 받은 영향 탓이다. 영농의 기계화로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에 대한 절박함이 다가왔다.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민요가 사라지는데 그것의 귀중함을 아는 내가 방치하는 것은 죄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박씨는 교직에 몸담은 후 휴일과 방학 때면 오토바이와 녹음기, 카메라를 지참하고 산간벽지와 외딴마을을 누비벼 전승민요와 전설 수집에 나섰다. 마을에 들어서면 박봉을 털어 주민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대접해서 흥을 풀어냈다. 처음 거창 함양 합천 산청 등 서북부 경남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거제 밀양 등 경남 전역뿐만 아니라 경북 구미·선산, 경기 과천 등 전국 모든 지역으로 넓혔다. 최근에도 함양의 외딴 산지로 오토바이를 타고 수집에 나서 녹취 중이다. 이렇듯 수십년 간 전국적으로 찾아간 마을만 수만여 곳. 발굴한 민요와 전승전설도 수만여 개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은 거창민요 1천259곡을 수록한 `거창민요'(92년) 등 15권의 책과 2천여 개의 테이프에 담겨 있다. 채록 중 어려움도 많았다. 녹음기가 귀했던 시절 주민이 구술하는 내용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기본.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인적이 드문 산간오지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고장, 경북 구미 오지마을에서는 민요를 수집하다 간첩으로 몰려 카메라와 녹음기를 압수당한 일, 어떤 마을에선 밤중에 상여소리를 채록하다 멱살 잡힌 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민요의 보존·전승에의 헌신 장마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 지난 7월4일 낮 12시. 거창의 계명대학교 학습관에 들어서자 농촌의 들녘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면/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50∼70대 주부 20여명이 박 교수의 지도로 태평가를 부르고 있었다. 박 교수는 거창삼베일소리 및 거창일소리보존회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처럼 일주일에 두번씩 노래연습과 공연을 지도해오고 있다. 지난 85년 향토민속민요보존회를 처음 창립, 자신이 발굴한 거창삼베일소리와 거창일소리의 보존을 위해 두 개의 단체로 분리해서 지속적인 전수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것. “민요는 수집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것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세계화를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 것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거창삼베일소리는 지난 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 및 개인상을 수상, 거창에선 처음으로 지난 95년 도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됐고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42회의 전수공연을 했다. 거창일소리는 2003년 제32회 경남도 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 및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지난 2004년 도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 박 교수는 또 지난 2002년 거창여고에 삼베일소리 전수반을 편성해서 가르쳐오고 있고 진주MBC와 PSB의 `박종섭 민요기행', KBS `국악춘추' 등 각종 방송에도 고정출연해 우리 민요 알리기에 힘써왔다. #민요에 대한 행정의 무관심 안타까워 “지금까지 녹음한 테이프는 3천여 개 정도 됩니다. 하지만 한번씩 재생시키지 않고 방치되면서 음질불량으로 버린 것이 700∼800여개 정도는 될 것입니다.” 박 교수가 전국을 돌면서 어렵게 녹음한 테이프가 오래 되면서 장기보존을 위해선 CD나 DVD로 새롭게 저장해야 하지만 사비로 하기에는 벅찬 상태다. 이 때문에 시나 도에 예산을 요청해오고 있지만 담당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의 전문성 부재가 아쉽기만 하다. 거창 삼베일소리의 전수보존도 마찬가지다. 거창삼베일소리의 소리 보존뿐만 아니라 거창 삼베를 관광상품화시키기 위해 전수회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지만 예산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안동모시는 안동시의 지원으로 유명상품으로 성장한 점을 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예능전수자나 보유자들이 이 분야에만 매달려도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우가 미약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오늘도 민속문화를 찾아 오토바이와 녹음기, 카메라에 의존하여 전국의 산간벽지를 찾아다니며 민속문화의 뿌리를 찾는데 쏟아부은 집념의 인생길. 그러나 여전히 서부경남을 비롯, 우리나라 전역에 남아있는 민요나 전설이 제대로 수집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스라이 먼 기억 속에서라도 가물대는 민요가락이나 전설을 떠올릴 수 있는 노인들도 이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가고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민속문화를 전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가고 있다. 농촌 들녘이 트랙터 기계소리로 울려퍼질 날이 머지않은 지금, 박 교수가 오늘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민요나 전설을 찾아 산간벽지로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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