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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시인 신달자와 경남 거창 -국제신문
등록일: 2006-12-22
新 문학기행 <59> 시인 신달자와 경남 거창 -국제신문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 고향 슬픈 가족사가 있었기에 벗어나고 싶었고, 떠나는 순간 사랑하게 된… 어머니 품고 살아온 문학인생 정점에 찾은 그곳은 설국이 되어 반겼다 "그동안 다니신 문학기행에서 이렇게 눈이 펑펑 많이 온 적이 있나요? 없었다구요? 저도 이런 눈은 오랜만이에요. 그 눈 속에서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부산에서 내 고향 거창까지 와주셔서 참 고마워요. 춥고 불편하실 텐데. 사실 오늘 새벽 서울에서 거창으로 오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을 만나러 오는 것처럼 설렜어요. 고향은 그렇게 절 늘 설레게 해요. 고향을 본다는 기쁜 마음에. 그리고 내 상처와 내 어린 시절과 내 가족사를 다 알고 있는 고향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아픈 마음에…. 해가 지면 길이 빙판이 될지 모르니까 빨리빨리 다녀야겠네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다니실 땐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 고향과 상처, 상처와 문학 신달자 시인은 연신 문학기행 일행에 대해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7일 '신달자 시인과 함께 하는 경남 거창 문학기행'(부산문화연구회·동보서적 주최, 국제신문 특별후원)에 참가한 일반 독자들을 태운 대형 전세버스는 만원이었다. 엉덩이 하나 더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부산에는 함박눈이 쏟아졌다. 거창에서도 눈은 장관이었다. 어련할까. 거창의 지경을 빙 둘러 1000m 넘는 산만 열 몇 개를 헤아린다. 그 산들은 스키장이 있는 무주 덕유산, 준봉의 행렬인 합천 가야산 능선과 어깨를 잇댄다. 이번 문학기행에 울산 시인들과 함께 동참한 정일근 시인이 "조 기자! 이번 문학기행 기사는 '고개를 넘어서자 설국이었다'로 시작하는 게 어때?"하고 말을 건네왔다. 그 정도로 이날 거창에는 탐스러운 눈이 종일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는 신달자 시인은 문학기행 일행에게 이 함박눈만큼이나 인상 깊은 만남을 선사했다. 신 시인은 1964년 문단에 나와 1972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시인의 길에 들어선 시인이며 한때 소설 '물위를 걷는 여자', 에세이 '백치애인'으로 장안의 지가를 저 높은 데까지 올렸던 유명한 문인이다. 이런 이유인지 그를 처음 대면할 때 일행 사이에서는 약간의 긴장감이 도는 듯했다. 하지만 시인은 종일 함께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내내 몸을 낮추고 자신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핀 문학을 상세하게 전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줬다. 이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동서울터미널로 향하다 폭설 소식에 KTX로 교통편을 바꾸고 동대구역에 내린 뒤 대구 서부터미널로 가서 다시 시외버스로 거창에 홀로 들어서는 먼 길을 오면서도 고향에서 독자를 만난다는 설렘에 힘든 줄 몰랐단다. 이런 그의 소탈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은 사람들에게도 이내 전달됐다. 날씨 탓에 거창박물관의 오래 된 대동여지도를 구경하고 난 뒤 신달자 시인이 쓴 추모시비가 들어설 예정인 거창사건추모공원으로 향하는 대신, 거창문학회와 거창작가회의에서 급히 마련해준 거창군립한마음도서관 강당에서 일행은 신 시인과 마주 앉았다. "나는 거창읍에서 태어났어요. 거창읍 곳곳에 추억이 박혀 있어요. 거창여중을 나와 거창여고에 들어간 뒤 1년 만에 부산으로 전학 갔죠. 저는 그때 고향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는 운도 참 없지! 어쩌다 이런 시골에 태어나서…'하며 지냈죠. 그런데 바라던 대로 고향을 떠나는 순간 저는 고향을 알게 됐고 고향을 사랑하게 됐어요." # 아! 거창 그렇게 시인이 들려준 고향, 가족사, 어머니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싶을 만큼 뜨겁고 방대한 것이어서 여기에 다 소개할 재간이 없다. 거창읍에서 정미소와 제재소 등을 운영한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자고 나면 돈이 쌓였고 자고 나면 돈이 쌓였다. 집안일 탓에 집에 있던 돈을 가마니에 다 넣고 땅속에 묻어놓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가마니를 다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집은 거창 터 좋은 곳에 춘양목으로 지은 것이었고 1950년대 초에 집안에 일본식 목욕탕을 새로 들였다. 아버지에게는 거창 안에만 다섯 부인이 더 있었고 그들에게는 모두 소생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불행했다. 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아 봉지쌀을 팔아 집안살림을 해야 했고 흔한 말로 '한량'이었던 부친 탓에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서러웠다. 집안의 몰락은 갑작스럽게 왔다. 그 많던 돈들이 흔적도 없이 깡그리 사라지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는 날 어머니는 일부러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새벽 2시에 이사할 것을 고집했고 이삿짐차가 서울로 달려가던 12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신달자가 "엄마! 걱정 마 내가 돈 벌어서 이 집 다시 사줄게!"하고 외쳐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을 삭이고 삭이며 살아온 어머니는 고등학생 신달자가 거창을 떠나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새벽안개 낀 거창차고에서, 그가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홀로 4년 동안 겨우 글을 깨쳐 쓴 첫 편지에서, 딸이 사경을 헤매던 병석에서, 딸이 생애 최대 고비에 서게 돼 도움이 절실하던 순간에도 이 말만을 반복했다. "딸아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첫째 니는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라. 둘째 내가 살아 봉께 여자도 돈이 있어야 하더라. 니는 돈도 벌어라. 셋째 여자로서도 행복해라." 신 시인이 이 말만을 좇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요했던' 이 메시지는 그가 상처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의 근원에는 고향 거창이 있었던 것이다. 고향 을 찾은 신 시인의 얼굴에서 이날 하루 내내 환한 기운이 번지다가도 어딘지 우수가 떠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 비로소 알 것 같다. 그는 얼마 전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문학동네)는 제목의 산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그런데 문학기행에 참가한 청소년들인 동래여고 문예반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그가 들려준 문학론은 "청어를 산 채로 운송할 때 천적인 가물치 한 마리를 같이 넣어놓으면 청어가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그 가물치가 문학이라는 것이니 상처와 고통 앞에서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시인은 이제 이렇게 고향을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바라본 땅을 아시는지요//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집 가족 이웃 학교 별/친구라는 말을 처음 배운 곳을 아시는지요//사랑이라는 말을/꿈이라는 말을/마음이라는 말을 처음 고백한 곳/그곳은/세상에서 가장 맑은 바람 불고/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 넘치는 곳/언제나/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이 기다리는/또 하나의 어머니/아! 거창'(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 중 '아! 거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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