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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강신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국제신문
등록일: 2007-07-21
[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강신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국제신문 "부산 개방성·역동성 살려 과학메카로" '사막의 기적' 두바이 벤치마킹을 지역인재 흡수할 프로젝트 마련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강신원 원장이 신성장 동력산업과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야 부산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우리나라 출생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냐. 두 분 이다. 한 분은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란 건 잘 알거다. 그런데 부산 태생의 찰스 페더슨이 화학상을 받은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강신원 원장(60)은 뜬금없이 노벨상 얘기를 꺼냈다. 198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찰스 페더슨은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나 8살까지 살았다. 노르웨이 출신 철도기술자로 한국에 왔던 아버지가 결혼해 부산에서 출생한 페더슨은 초분자 화학이론에 대한 연구 등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강 원장은 "로마의 번영은 이민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개방성에서 비롯됐으며 부산은 한국의 관문도시로 기능해 왔다"고 말했다. 강 원장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부산의 개방성과 역동성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부산이 과학기술의 메카로 발전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산이 이 같은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 그는 "그 지역의 인재를 해당 지역이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는 수준을 가늠하는 매트릭스 밸류라는 것이 있다"며 "부산이 지역 인재를 흡수하지 못해 다른 데로 흘러가고 있는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산이 개방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신성장동력 산업과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해 나간다면 천년을 약속할 수 있는 과학의 전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전을 봐라.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인천을 봐라. 송도 프로젝트로 금융과 실버산업의 허브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부산도 이런 프로젝트가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부산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도전이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원장은 "갯벌을 메워 세계적인 연구소를 유치하는 인천의 도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산도 지역 인재를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신성장동력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가 사막의 기적을 일궈낸 두바이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다"며 "육지와 바다를 잇는 관문일 뿐 아니라 철도로 유럽으로 가는 출발지인 부산이 두바이 프로젝트에 못지않은 부산 프로젝트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정치권에 대한 쓴 소리도 쏟았다. 그는 "미래를 위한 위대한 선택을 일반시민들이 처음부터 이해하고 박수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되면 시민들은 열광한다"며 "정치권이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민간분야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연구과학 자재를 지원하는 곳이다. 강 원장은 부산에서 전국 처음으로 중앙·지방정부·산업계가 참여한 하이테크 부품소재 연구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각 산업의 핵심부품을 개발하고 신기술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4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사람은 큰물에서 커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산으로 와 개성중·동아고·부산대와 일본 규슈대를 거쳐 부산대 교수로 봉직해 왔다. "부산대 조교시절 선을 보고 만난 아내와 데이트를 위해 온천장으로 달려가던 때가 선하다"는 그는 부산의 미래를 위한 열정만큼은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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