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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가조 출신 김상훈(상) -도민일보

등록일: 2007-08-07


거창 가조 출신 김상훈(상) -도민일보 뜨거운 열정 불태웠던 '월북시인' 6·25직전 보도연맹 가입 전향 남로당 계열 숙청 영향, 70년 초부터 시 발표 거창군 가조면. '특이하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신비스러운 기운마저 감도는 땅이다. 두무산과 오도산 등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로, 넓은 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거창읍에서 가조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군 단위의 경계를 넘는 것처럼 고달팠다. 가조면은 거창사람들에게 김태호 도지사의 고향으로 회자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조면사무소를 지나 가조온천 지구 쪽으로 들어갔다. 들이 너무 넓어도 목적지를 찾기는 어려운 법인 것 같다. 원래 가고자 했던 '일부리 부산 마을'을 조금 지나고 말았다. 당산나무 아래 모여 있는 동네 아낙네들에게 부산마을이 어딘지 물었다. 신문사 로고가 박힌 취재차량을 본 그네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왜? (김태호)도지사 고향 찾으려고?"였다. ◇ 40여년 만에 드러난 '월북시인' = 김상훈(1919∼1987)은 '월북시인'이다. 1988년 정부의 납북·월북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광복기 활발한 문필 활동을 벌인 김상훈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진 편이다. 40여 년 동안 풍문으로 나돌던 김상훈에 대한 기록을 공개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또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유족(김종철·김종석)들에 의해 생전에 남긴 작품이 공개되기도 했다. 김상훈은 1919년 '상산 김씨' 집성촌인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 마을에서 태어나, 18세까지 그 곳에서 전통적인 서당 공부를 한다. 그러다 늦은 나이에 서울 중동중학교(5년제)에 입학하게 되고 유진오 시인과 만나 함께 문학수업에 열중한다. 이후 이들은 1946년 김광현·박산운·이병철 등과 함께 공동시집 <전위시인집(노농사)>을 발간한다. 김상훈은 여러 항쟁시를 남겼다. 그러나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살벌하지'는 않았다. "마치 <시경>을 읽는 느낌을 주고…그 표현에서 장중미와 골계미를 함께 전해주는 전형적인 우리 민족의 정서가 스며있다(<김상훈 시연구> 41p)"는 평가다. ◇ 상처와 좌절감에 몸부림 = 해방되기 전부터 입북하기까지 김상훈의 이력은 신산스럽다. 물론 자의반 타의반에 의한 것이었고, 역사의 한 가운데서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측면에 무게가 실린다. 김상훈은 해방 직전인 1944년 원산철도공장에 강제징용 되었고, 이후 발군산(강원도 춘천 일대)에 입산해 무장항일투쟁운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광복 이후에는 좌익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6·25 전쟁 직전에 보도연맹에 가입함으로써 공식적인 전향을 한다. 김상훈은 당시 함께 보도연맹에 가입한 정지용(1902∼1950) 시인과 함께 전국 순회 '전향강연'을 하게 된다. 이때 김상훈은 정지용 시인을 보며 '지용선생이 이제 시를 못 쓸 것 같이 고민하는 것이 보기 딱하다'는 안타까움을 느꼈고, 정지용 역시 김상훈을 향해 '아까운 젊은 시인이 세월을 잘못 만나 고생한다(<김상훈 시연구> 33p)'는 말로 아껴 주었다고 한다. 1950년 서울이 인민군 치하에 들어갔을 때, 김상훈은 한 번 더 '변신'을 하게 된다. 1950년 8월 의용군에 입대해 전선에 투입되고, 그해 10월 유엔군에 쫓겨 단신 입북한다. 1950년 초와 1960년대 초 북한에서 남로당 계열 문인이었던 임화·김남천·이태준·한설야 등이 숙청된 영향 때문인지, 김상훈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1970년 초반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영화감독 신상옥(1926∼2006)이 북한에 머물던 때 김상훈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를 회상하는 기록은 이채롭다. "김상훈은 1986년 (최)은희와 나를 초대하기로 했으나 우리는 방문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 무렵에는 우리들의 탈출 계획이 완성된 단계여서 우리들의 도망 후 만일 그에게 피해가 미칠지 모른다고 염려되었기 때문이다.(<김상훈 시연구> 36p)" 현재 거창군 가조면 가조 온천지구 입구에 김상훈 시비가 있다. '종달새'라는 시를 '다천 김종원'이 멋스러운 필치로 새겨 넣었다. "금실바람 은실바람/노랑 꽃잎 향내 묻어/아지랭이 아지랑이/봄은 자꾸 가자는데//떴다!/종다리/불길같은 울음소리/넋이 소리되어/하늘 가득 우는 소리//청춘을 못다 산/이 골안 젊은이의/피맺힌 그날의/한 많은 사연인가//보리고개 넘다가/통곡을 하던/강 마을 어머니의/기나긴 설움인가//못배겨 못배겨/안울고는 못배겨/내일을 불러서/몸을 태우는//종다리, 아아/갈망의 새야/봄은 가자는데/너만 우느냐" (하)편에서는 가조면 일부리 부산 마을에 남아 있는 김상훈(상산 김씨 가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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