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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교통 발달…'지역'이 사라졌다 -도민일보

등록일: 2008-07-05


통신·교통 발달…'지역'이 사라졌다 -도민일보 촛불집회가 서울로 집중되는 6가지 이유 지난달 28일 서울 촛불집회에는 부산과 경남 등 각 지역을 표시한 깃발이 대거 참여했다. /김주완 기자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꾼 큰 항쟁들은 모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시작되었거나, 지역의 항쟁이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된 곳도 충남 천안이었다. 해방 이후 친일 친미정권이었던 이승만을 무너뜨린 1960년 4·19혁명은 2·28대구학생시위와 3·15마산의거에서 시작돼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신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또 박정희 독재의 종말을 고한 79년 부마민주항쟁과 80년대 반독재투쟁의 불씨가 된 광주민중항쟁 역시 '지역'이 중심이었다. 87년 6월 항쟁도 서울이 중심이긴 했으나 6월 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든 항쟁에 다시 기름을 끼얹었던 것은 진주와 마산, 부산 등 영남권의 격렬한 시위였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이상할 정도로 서울 중심성이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시군에서도 열리고는 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국 상황에 거의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촛불집회의 양상과 흐름을 취재해본 결과, 과거와 달리 이번 촛불집회에서 '지역'이 별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과거의 다른 항쟁과 달리 이번 촛불집회의 발원지가 '인터넷'이었다는 것이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참사사건 때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도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번 촛불집회 만큼 시작에서부터 진행과정까지 줄곧 인터넷이 중심이 되고 있는 항쟁은 드물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 없다. 서울이든 마산이든, 춘천이든, 광주든 인터넷에서는 동일한 공간일 뿐이다. 즉 거리와 공간의 차이가 없어져버린 항쟁이 이번 촛불집회라는 것. 따라서 인터넷에서 '가치와 관심사에 따른 공동체'는 있을지언정 '지역별 공동체'는 존재하기 어렵고,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공간은 조회수와 추천수, 댓글수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된다. 즉 하루에 올라가는 수천, 수만 건의 글 가운데 베스트 10위 또는 20위권에 들어가지 못한 글은 사장되고 마는 특성을 갖고 있다. 베스트에 올라간 글은 순식간에 수십 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지만, 나머지는 거의 읽히지 않은 채 묻혀버린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은 선택받을 수 있는 여지가 희박하다. 둘째, 발원지가 인터넷이었던 데 이어 오프라인 집회의 시발지가 서울의 중심부인 광화문 청계광장이었다는 점이다. 앞에는 청와대가, 뒤에는 서울시청 광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정부중앙청사와 미대사관은 물론 대표적인 친정부 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버티고 있는 곳이어서 집회 초기부터 강력한 장소의 상징성을 획득했다. 이런 상징성이 촛불집회의 서울 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세 번째로는 앞서 말했던 인터넷 등 통신과 매체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교통수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점을 들 수 있다. 21년 전 6월 항쟁 때까지만 해도 남해·하동·거창·산청·함양·합천 등 이른바 서부경남 사람들이 마산 집회에 참여하려면 약 세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87년 6·10대회 때는 경남의 전 시·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산으로 집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까지 가는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마산에선 세 시간 반, 진주나 거창 함양 등 서부경남에서는 그보다 짧은 두 시간 반이면 된다.) 그러나 지금도 서부경남에서 마산까지의 시간거리는 21년 전과 같다. 마산이나 창원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투자했던 세 시간이면, 서울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데 굳이 마·창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10일과 28일 서울 집회 현장에는 전국의 각 지역별 깃발이 수십 개에 달했다. 넷째, 경찰 역시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시위진압에 투입되는 전·의경 상설부대 인력도 거의 서울에 집중해 있다. 지역 집회는 굳이 막을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방송과 신문 등 기존 언론은 물론 인터넷언론과 1인 미디어라 불리는 블로거들까지도 지역의 집회에 대해서는 거의 취재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부산의 '커서'(http://geodaran.com/)와 광주의 'Dream'(http://blog.daum.net/ideabanker/) 등 열심히 지역 촛불 소식을 전하고 있는 블로거도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도 지역 촛불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지역 일간지들조차 자기지역의 촛불집회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어떤 지역신문은 지역의 촛불집회를 사진 없이 사회면 구석에 1단으로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방송의 9시 뉴스에도 지역 상황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여섯째, 지역의 촛불집회에서 서울을 앞서는, 또는 서울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라든지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언론의 관심에서도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특히 21년 전 6월 항쟁 때는 진주지역 대학생들이 고속도로나 철로를 점거하고 LPG운송트럭을 탈취하는 등 과격한 시위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비폭력'이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 바람에 지역의 돌출적인 과격시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낮다. 이런 것들이 2008년 촛불집회가 과거 3·15와 4·19, 10·18, 5·18, 6월 항쟁과는 확실히 다른 서울 중심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렇잖아도 모든 분야에서 서울집중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시위마저도 지역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 대항하여 '지역을 지키자'고 하는 건 기계적인 지역주의이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조건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함으로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해 블로거 커서는 "과거의 다른 항쟁처럼 정권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는 투쟁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책, 통치스타일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도 서울로 집중되는 이유인 것 같다"면서 "평소에는 지역 집회를 꾸준히 하더라도 지난 6월 10일이나 7월 5일처럼 고비가 되는 특별한 날에는 서울로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집회에서 폭력은 아니더라도 서울과 다른 특별한 투쟁방식이 나온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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